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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막걸리 안주 (두부김치, 감자전, 묵은지)

hyeon100 2026. 10. 9. 08:15

목차


    선선한 바람이 한 번 스치고 나면 이상하게 기름 냄새가 당긴다. 배달 앱을 열다가도 문득 '그냥 내가 부쳐 먹지' 싶어지는 날이 있는데, 이번 가을이 딱 그랬다. 냉장고에 잠자고 있던 묵은지 한 포기와 감자 두 알. 이걸로 두부김치와 강원도식 감자전을 만들어 봤는데, 만드는 방식을 조금 바꾸니 결과가 꽤 달랐다.



    고기 없는 두부김치, 들기름과 묵은지가 전부였다

    두부김치를 만들 때마다 참치캔을 넣거나 돼지고기를 넣어야 맛이 난다고 생각했다. 제가 직접 해봤는데, 그 고정관념이 이번에 완전히 깨졌다.

    이번엔 고기류를 전혀 넣지 않는 방식으로 만들었다. 핵심은 묵은지와 양파, 그리고 들기름이었다. 묵은지(오래 숙성된 김치)란 유산균 발효가 충분히 진행돼 신맛과 감칠맛이 동시에 깊어진 김치를 말한다. 갓 담근 김치와는 결이 다르게, 볶으면 볶을수록 부드럽고 깊은 풍미가 올라온다.

    양파는 생각보다 훨씬 많이 넣었다. 김치 양의 3분의 1에서 절반 가까이. 처음엔 '이게 맞나' 싶었지만 볶으면서 양파의 수분이 자글자글 올라오며 김치와 어우러지는 걸 보고 이해가 됐다. 양파를 김치 줄기와 비슷한 크기로 맞춰 썰어 넣으니 한 입에 씹히는 식감 밸런스가 달랐다. 이 크기 맞추기가 아무 의미 없어 보여도, 실제로 먹어보면 입안에서 느껴지는 균형이 확실히 다르다.

    볶음에 간을 더할 때는 굴소스나 설탕 대신 어간장(액젓과 간장을 블렌딩한 조미료)을 두 스푼 넣었다. 어간장이란 액젓 특유의 강한 냄새 없이 감칠맛을 더할 수 있어 볶음 요리에 특히 유용하다. 집에 없다면 '연두' 같은 콩 기반 액상 조미료로 대체해도 무방하다고 느꼈다. 여기에 조청(쌀이나 곡물을 당화시킨 천연 감미료)을 조금 더했는데, 조청이란 설탕과 달리 윤기를 살리면서 자극 없이 단맛을 올려주는 재료다. 마지막에 들기름을 넉넉히 두르고 불을 끄면, 기름의 향이 김치 볶음 전체에 퍼지며 마치 고기가 들어간 것 같은 풍미가 생긴다.

    두부는 부침용 두부를 선택했다. 찌개 두부는 기공이 많아 국물을 지나치게 빨아들이고, 부침용 두부는 기공이 적어 단단하고 고소한 맛이 살아 있다. 끓는 물에 소금 한 꼬집을 넣고 1분 남짓 데쳐 물기를 빼줬더니 두부가 더 탱탱해지면서 김치를 올렸을 때 무너지지 않았다.

    • 묵은지: 김치국물까지 통째로 넣어 볶기
    • 양파: 김치 줄기 크기에 맞춰 썰어 넉넉히 추가
    • 어간장 2스푼 + 조청 소량 + 들기름 넉넉히 — 이 세 가지가 풍미의 핵심
    • 부침용 두부 선택 후 끓는 물에 1분 데쳐 물기 제거
    요약: 고기 없이도 묵은지·양파·들기름의 삼각 조합만으로 깊고 편안한 두부김치 맛을 낼 수 있다.

     

    강판 갈기가 번거로워도 감자전은 이게 맞다

    믹서기로 감자를 갈면 편하다는 건 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르다. 믹서기는 감자를 너무 곱게 갈아 질감이 사라지고, 결국 그냥 전분 반죽을 부치는 느낌이 된다. 강판에 직접 갈면 감자의 결이 살아 있는 거친 질감이 유지되는데, 이게 구웠을 때 겉바속쫀(겉은 바삭하고 속은 쫀득한 식감)의 차이를 만든다.

    감자를 강판에 갈 때 중요한 게 있다. 감자는 산화 속도가 빨라 갈기 시작하면 금방 분홍색이나 자주색으로 갈변(산화 갈색화)된다. 갈변이란 감자 속 폴리페놀 성분이 공기 중 산소와 만나 색이 변하는 현상으로, 맛보다 외관에 영향을 준다. 이걸 막기 위해 강판에 갈기 전 소금과 설탕을 아주 조금 뿌려주면 효과가 있다.

    갈고 나서 채반에 받쳐 물기를 빼는 과정이 핵심이다. 흘러내린 감자물을 잠시 그대로 두면 바닥에 새하얀 감자 전분이 가라앉는다. 이걸 따라낸 물은 버리고, 남은 전분 앙금에 물기를 뺀 감자를 다시 넣는다. 여기에 밀가루를 수분이 잡힐 정도로만 조금 넣으면 반죽이 완성된다. 부침가루를 쓰면 바삭함이 강해지고, 일반 밀가루를 쓰면 쫀득함이 살아난다. 저는 쫀득한 쪽이 좋아서 밀가루를 선택했다.

    구울 때는 올리브유 대신 카놀라유나 포도씨유처럼 향이 없는 기름을 쓰는 게 맞다. 여기에 들기름을 약 3대 1 비율로 조금 섞어주면 고소한 향이 더해지면서 감자전의 풍미가 한층 올라간다. 중불에서 가장자리가 해시브라운 색이 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뒤집으면 된다. 한 가지 더, 뒤집자마자 보리새우를 한 줌 올려봤는데 새우에서 나오는 기름이 감자전에 스며들면서 전혀 다른 안주가 됐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다. 그냥 고명이 아니라 감칠맛의 층이 하나 더 생기는 느낌이었다.

    농촌진흥청 자료에 따르면, 감자에 들어 있는 저항성 전분은 일반 전분보다 소화 흡수가 느려 포만감을 오래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한다(출처: 농촌진흥청). 이처럼 감자를 갈아 전분을 직접 활용하는 방식은 영양 측면에서도 나름의 이점이 있다.

    요약: 강판으로 갈고, 감자 전분을 직접 활용하고, 들기름 소량을 섞어 굽는 것이 강원도식 감자전의 핵심 순서다.

     

    이 두 안주가 막걸리 한 잔에 맞아떨어진 이유

    이번에 함께 마신 막걸리는 강원도 원주에서 만든 12도 쌀막걸리였다. 냉동실에 30분쯤 넣어 차갑게 식혔더니 색이 선명하고 점도가 있는 편이었다. 마셔보니 옥수수 술빵 같은 냄새가 났고, 뒷맛은 누룽지 막걸리처럼 꼬소하면서 단맛이 없었다. 국산 옥수수가 들어간 영향인지 꽃향 같은 잔향도 느껴졌다.

    막걸리나 동동주 같은 탁주류(쌀, 보리 등을 발효시켜 체에 거른 전통 발효주)는 알코올 도수가 낮아도 흡수가 빠른 편이다. 탁주란 발효 과정에서 생성된 효모와 유산균이 아직 남아 있는 살아 있는 술로, 탄산감과 함께 위장에서 빠르게 작용하기 때문에 음식과 함께 천천히 마시는 것이 좋다. 제가 이번에 절반 정도만 마신 것도 그 이유였다.

    막걸리와 이 두 안주가 잘 어울리는 이유는 온도와 맛의 대비 때문이라고 느꼈다. 차갑고 산미가 있는 막걸리를 한 모금 마시고, 따뜻하고 기름진 두부김치를 입에 넣으면 서로 상쇄되듯이 균형이 잡힌다. 바삭한 감자전은 막걸리의 점도감을 씻어주는 역할을 해서 한 잔 마실 때마다 입이 깔끔해진다.

    한국전통주연구소의 자료를 보면, 막걸리의 유산균 함량은 요거트 수준에 달할 만큼 높은 편이며, 발효 식품인 김치와 함께 섭취할 때 장내 환경에 긍정적으로 작용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출처: 한국전통주연구소). 물론 과음은 별개의 문제이지만, 제대로 된 안주와 천천히 마시는 막걸리 한 잔은 음식으로서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

    결국 이번에 느낀 건 하나였다. 재료를 더 넣는 게 아니라, 원래 재료를 어떻게 다루느냐가 맛을 결정한다는 것. 두부김치는 고기를 빼도 됐고, 감자전은 밀가루를 최소화해도 됐다. 오히려 그 편이 각 재료 본연의 맛이 더 선명하게 남았다.

    요약: 막걸리의 차가운 산미와 따뜻한 기름 안주의 대비가 궁합을 만들며, 재료를 줄일수록 본연의 맛이 살아난다.

     

    자주 묻는 질문

    Q. 두부김치에 묵은지 대신 일반 김치 써도 되나요?

    A. 됩니다. 다만 덜 익은 김치는 볶아도 신맛이 약하고 깊이가 덜할 수 있어서, 볶기 직전 불을 끄기 전에 식초를 조금 넣어 산미를 보충하면 묵은지와 비슷한 느낌을 낼 수 있습니다. 제가 직접 해봤을 때도 이 방법이 꽤 효과적이었습니다.

     

    Q. 감자전 갈변이 너무 빨리 되는데 막을 방법 없나요?

    A. 감자를 강판에 갈기 시작하기 전에 소금과 설탕을 각각 한 꼬집씩 미리 뿌려두는 게 포인트입니다. 갈변은 산소와 만나는 시간이 길수록 심해지므로, 갈고 나서 바로 채반에 올려 물기를 빼는 것도 속도를 늦추는 데 도움이 됩니다.

     

    Q. 감자전을 바삭하게 만들고 싶으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A. 밀가루 대신 부침가루를 넣으면 겉의 바삭함이 더 강해집니다. 그리고 반죽의 물기를 충분히 뺄수록 기름에 부쳤을 때 수분이 적어 더 바삭해집니다. 전분 앙금을 반드시 살리는 것도 바삭함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Q. 두부김치에 어간장이 없으면 뭘 써야 하나요?

    A. '연두' 같은 콩 기반 액상 조미료나 국간장을 소량 사용하면 됩니다. 액젓 냄새가 부담스러운 분들에게는 연두가 훨씬 편하게 쓸 수 있었습니다. 제 경험상 간장만 단독으로 쓸 경우 짠맛 위주가 되므로, 감칠맛 재료를 한 가지 더 같이 쓰는 것을 권합니다.

     

    Q. 보리새우를 올린 감자전, 보리새우는 어디서 사나요?

    A. 대형마트 건어물 코너나 온라인 수산물 판매처에서 쉽게 구할 수 있습니다. 태우젓용 사이즈의 작은 보리새우를 사되, 안에 작은 멸치가 섞인 것을 고르면 감칠맛이 한층 더 좋아집니다. 냉동 보관하면 오래 두고 쓸 수 있어 편합니다.

     

    결론

    이번에 만들어보고 가장 인상 깊었던 건 두 음식 모두 '덜어낼수록 맛이 선명해진다'는 공통점이었다. 두부김치는 고기를 빼고, 감자전은 밀가루를 줄이고 전분을 살렸다. 결과적으로 묵은지의 깊은 발효 맛과 감자 특유의 달고 쫀득한 질감이 훨씬 잘 느껴졌다.

    가을 저녁, 선선한 바람이 들어오는 창가에서 갓 부쳐낸 감자전과 윤기 나는 두부김치를 앞에 두고 차가운 막걸리 한 잔을 천천히 마신 시간이 꽤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배달이나 외식이 아니어도 이 정도 퀄리티가 나온다는 게 솔직히 놀라웠다. 냉장고에 묵은지와 감자만 있다면, 이번 가을엔 한번 직접 해보시길 추천하고 싶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naDsvuqq2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