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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저는 여름마다 입맛이 떨어지면 그냥 편의점 삼각김밥으로 때웠습니다. 뭔가 차려 먹을 의욕이 안 생기거든요. 그런데 올여름, 양념간장 하나 만들어 두고 나서부터 밥상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호박잎, 콩나물밥, 깻잎까지 뭐든 올려도 맛있는 그 간장 하나가 제 여름 밥상의 판도를 바꿔놓았습니다.
만능 양념간장, 기름은 나중에 넣는 게 맞습니다
처음 이 양념간장을 만들었을 때, 저는 습관적으로 참기름을 미리 넣으려 했습니다. 그게 당연한 순서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직접 써보니 그게 큰 실수였습니다. 기름을 미리 섞어두면 고춧가루와 깨가 기름을 머금으면서 시간이 지날수록 산패취, 즉 쩐내가 올라옵니다. 산패(酸敗)란 기름이 공기 중 산소와 반응해 불쾌한 냄새와 맛을 만들어내는 현상입니다. 그래서 이 양념간장은 기름 없이 보관하고, 먹을 때마다 참기름이나 들기름을 그 자리에서 두르는 방식이 훨씬 현명합니다.
액체 재료는 간장, 멸치 액젓, 물엿, 양조 식초 이렇게 네 가지입니다. 여기서 멸치 액젓의 역할이 결정적인데, 액젓이 가진 아미노산이 간장의 아미노산과 만나면서 감칠맛(우마미)이 배가됩니다. 감칠맛이란 단맛, 짠맛, 신맛, 쓴맛에 이어 다섯 번째 기본 맛으로 분류되는 것으로, 식재료의 깊이를 끌어올리는 핵심 요소입니다(출처: 농촌진흥청). 액젓이 없다면 간장을 두 숟갈 늘려도 되지만, 솔직히 그 깊이감은 따라오지 않더라고요.
물엿을 넣는 이유도 처음엔 몰랐습니다. 설탕이랑 뭐가 다른가 싶었는데, 실제로 만들어보니 점도가 생기면서 간장이 채소 위에 착 달라붙는 느낌이 확연히 달랐습니다. 설탕은 녹으면 그만이지만 물엿은 양념에 윤기와 질감을 줍니다. 양조 식초는 반 숟갈만 넣는데, 이 정도로는 산미가 올라오는 게 아니라 오히려 재료들의 맛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결합제 역할을 합니다. 야채는 적양파, 쪽파, 부추, 청양고추를 넣되 대파를 쓰면 진액 때문에 간장이 불필요하게 끈적해지니 주의하는 게 좋습니다.
- 간장(양조간장 또는 진간장) + 멸치 액젓으로 감칠맛 기반 구성
- 물엿으로 점도와 윤기 조절, 설탕보다 질감이 확연히 다름
- 양조 식초 반 숟갈은 산미가 아닌 재료 조화를 위한 것
- 기름(참기름·들기름)은 절대 미리 넣지 말고 먹을 때마다 따로
- 깨는 반드시 갈아서 넣어야 향이 살아남
호박잎쌈, 손질이 귀찮아도 큰 잎만 하면 됩니다
호박잎을 처음 손질할 때 저는 줄기를 어디까지 벗겨야 하는지 몰라서 잎을 반 이상 망쳤습니다. 잎 뒷면 가장자리를 잡고 쭉 당기면 섬유질 껍질이 벗겨지는데, 이걸 전부 다 하려고 하면 시간이 배로 걸립니다. 제 경험상 얼굴보다 작은 잎은 그냥 먹어도 됩니다. 섬유질이 질기게 느껴지는 건 손바닥보다 큰 잎들뿐이거든요.
데칠 때도 처음엔 바글바글 끓이다가 잎이 다 물러져 버린 적이 있습니다. 뽀글뽀글 올라오는 정도의 약한 불로 충분히 익히는 게 맞습니다. 이렇게 해야 잎 표면의 까실까실한 털, 즉 식물 표피의 모용(毛茸) 조직이 열에 의해 눌어붙으면서 입안에서 거슬리지 않게 됩니다. 모용이란 식물 잎 표면에 돋아난 미세한 털 구조물로, 충분히 가열해야 식감이 부드러워집니다. 2리터 물에 소금 한 티스푼 넣고 데친 뒤 찬물에 헹궈 주면 끝입니다.
조선 호박은 들기름을 두른 팬에 그냥 굽는 게 전부입니다. 두꺼운 단면이 채소의 단맛을 그대로 머금어 주거든요. 겉면이 살짝 익으면 물 한 숟갈을 넣어 뚜껑을 덮으면, 들기름과 호박에서 나온 풍미가 증기와 함께 호박 안으로 스며들어 갑니다. 이 방식은 스티밍(steaming), 즉 수증기를 이용한 찜 방식으로, 재료의 수분을 보존하면서 속까지 고르게 익히는 조리법입니다(출처: 식품안전나라). 소금 살짝에 양념간장만 곁들이면 이미 완성입니다.
콩나물밥에 깻잎까지, 양념간장 하나로 완성되는 밥상
사실 저는 콩나물밥을 그다지 대단하게 생각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냥 심심한 밥에 콩나물 얹은 거 아닌가 싶었거든요. 그런데 이 양념간장 한 숟갈을 넣고 쓱쓱 비벼 먹어보니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달지도 않고 새콤하지도 않은데, 자꾸 손이 가는 그 맛이 도대체 뭔가 싶을 정도였습니다.
깻잎찜은 만들기가 특히 간단한데, 들기름을 먼저 깻잎에 살짝 바른 뒤 양념간장을 아주 소량만 펴 바르는 게 포인트입니다. 양념을 한 장에 너무 두껍게 바르면 층층이 쌓았을 때 잘 뜯어지지 않고 뭉칩니다. 이걸 깻잎 논쟁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사실 볼륨감이 있어야 깔끔하게 한 장씩 분리됩니다. 제가 직접 여러 번 해봤더니 묻히는 듯 마는 듯 아주 얇게 바를 때가 가장 잘 뜯어지더라고요.
결국 이 밥상의 진짜 강점은 양념간장을 매개로 호박잎, 조선 호박 구이, 콩나물밥, 깻잎찜이 하나의 테이블 위에서 전혀 다른 음식처럼 느껴진다는 점입니다. 먹을 때 들기름을 두르면 들기름 비빔의 맛이 되고, 참기름을 두르면 또 다른 결의 고소함이 납니다. 같은 양념간장인데 어떤 기름을 더하느냐에 따라 호박잎쌈용, 콩나물밥용, 구운 김용으로 각각 달라지는 셈입니다. 이걸 냉장고에 하나 만들어두면 여름 내내 밥 걱정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만능 양념간장 냉장 보관하면 얼마나 가나요?
A. 기름을 넣지 않은 상태로 밀폐 용기에 보관하면 냉장에서 1주일 정도는 맛과 향이 잘 유지됩니다. 야채가 들어가 있으므로 오래 두기보다는 3~5일 안에 소진하는 게 가장 신선하게 먹는 방법입니다. 제 경우엔 만들어 두면 3일을 못 넘기고 다 먹게 되더라고요.
Q. 멸치 액젓 없으면 뭘로 대체해도 되나요?
A. 액젓이 없다면 간장 양을 두 숟갈 정도 더 늘리는 방법이 가장 무난합니다. 다만 액젓 특유의 감칠맛 깊이는 간장만으로 완전히 대체되진 않습니다. 까나리 액젓이나 새우젓도 대안이 되는데, 새우젓은 향이 강하므로 소량만 쓰는 게 좋습니다.
Q. 호박잎 데칠 때 얼마나 오래 삶아야 하나요?
A. 강하게 끓이지 않고 뽀글뽀글 올라오는 정도로 유지하면서 2~3분 정도면 충분합니다. 너무 짧게 데치면 표면의 털이 그대로 남아 입안에서 거슬리고, 너무 오래 삶으면 잎이 물러져 쌈을 쌀 때 찢어집니다. 데친 뒤 찬물에 바로 헹궈줘야 색이 살아납니다.
Q. 알룰로스를 물엿 대신 써도 되나요?
A. 이 양념간장처럼 가열하지 않고 생으로 쓰는 경우라면 알룰로스를 써도 문제없습니다. 다만 알룰로스는 가열하면 쓴맛이 생기는 성질이 있어 볶음이나 조림 같은 가열 요리에는 맞지 않습니다. 생으로 활용할 때만 대체 사용을 권합니다.
Q. 깻잎찜 만들 때 들기름 꼭 써야 하나요?
A. 들기름이 없다면 참기름으로 대체해도 됩니다. 다만 깻잎과의 궁합은 들기름 쪽이 훨씬 자연스럽습니다. 둘 다 없다면 올리브유를 아주 소량 써도 되지만, 한식 풍미가 약해지는 건 감수해야 합니다. 저는 들기름 없이 한 번 만들어 봤는데 뭔가 반쪽짜리 느낌이었습니다.
결론
이번 여름, 제가 가장 많이 떠올리게 될 밥상이 생겼습니다. 양념간장 하나를 만들어 두고 나서야 깨달았습니다. 여름 입맛이 없는 게 아니라, 입맛을 끌어올릴 준비가 안 돼 있었던 거라는 걸요. 액젓의 감칠맛, 물엿의 점도, 제철 채소의 풋풋함이 만나는 지점이 바로 여름 밥상의 중심이었습니다.
만능 양념간장을 냉장고에 하나 만들어 두고, 시장에서 호박잎 한 단, 조선 호박 몇 개만 사 와도 한 끼가 완성됩니다. 깻잎이 있으면 깻잎찜이 되고, 콩나물밥과 함께라면 비빔밥이 됩니다. 복잡한 기교 없이 제철 재료 본연의 힘만으로 이 정도 밥상이 된다면, 여름이 와서 감사한 게 음식 때문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